[연애] 잘해주면 안 되는 이유.

잘해주면 안 된다. 특히 연애에서만큼은 그렇다. 잘해주면 싫다. 배부른 소리 같지만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 인간은 모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밌다. 짜증나기도 하면서 마치 게임하는 것 같다. 문제는 지쳐 게임을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노력만으로 안되는 게 있다는 것이 뭔가 억울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력을 최고의 가치로 만들었다.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고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꿈꿨다. 노력하면 된다는 희망 하나로 우리는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관계발전은 오히려 퇴행하고 있다.
사회분위기가 급속도로 변하고 매체에서 성별 갈라치기 식의 선동들에 휩쓸려 남녀는 더 어색해지고 어울리기 힘들어졌다. 드라마에서는 남자주인공이 섬세하고 세심하며 다정하다. 여성들은 그 환상의 늪에 빠져 자신의 이상형은 다정한 사람이라고 말을 하지만 실상은 남자다운 사람이다. 머리는 그런 사람을 그리지만 본능은 그렇지 않다.
남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비슷하다. 자신에게 기대고 너무 잘해주면 부담스럽다. 복에 겨운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상대가 저자세로 나온다고해서 사랑이 더욱더 불타오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랑이 식는다.
장기, 체스와 같이 심리싸움이다. 상대에게 깊게 빠지면 안 되는 싸움. 그래서 남사친, 여사친을 만나는 거고 술자리를 갖기도 하는 거다. 서로를 불안하게 만들려는 의도다. 그래야 더 돈독해진다. 적당한 긴장감이 있을때 상대에게 더 신경쓰려 하고 자신을 가꾸려고 노력한다.
잘해주면 안 된다. 내 마음대로 내 소신껏 내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게 매력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이 사실을 깜빡한다. 꾸준한 연습으로 무심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체득이 될 때까지.
“프레임을 높여라” 이런 식의 말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다 필요없다. 너무 잘해주려하지 말아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내 삶을 사는 것이 프레임을 높이는 거다. 상대를 나의 통제권 아래 둘 수 있는 건 내가 그걸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여유롭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