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아무 것도 몰랐던

JW9 2021. 8. 1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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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까지 누구에게도 마음이 없었다. 남사친, 여사친 둘다 차별없이 아가페 적인 마음으로 대했다. 다정하게 말한다는 것 자체는 나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모르고 지냈던 내가, 처음으로 그런 감정을 알게 된 날이 있었다. 교외활동을 참여하게 되었다. 국회의사당에서 고등학생들끼리 법안을 발의하고, 질의응답하는 국정활동을 체험해보는 시간이었다.

그때 만난 한 친구에게서 알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 그 친구와 나는 무대에 서게 되었다. 어떤 공약과 포부를 놓고 학생들의 투표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 보통의 유세모습이다.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그 친구가 되기를 바랐던 마음에 농담을 던지며 참여한 친구들에게 투표를 유도했다. 결과는 내가 되었다. 괜히 미안해졌다.

그 친구와는 그 이후로는 다른 조로 배정되었고, 말을 할 순간조차 없었다. 의장의 역할을 맡다보니 말을 걸 수도 없었다. 똑부러지는 말투와 대답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1박 2일의 활동기간 동안 결국 어떤 말도 걸어보지 못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상대의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끼는 지를. 이성 뿐만 아니라, 친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자기표현 확실하고, 논리적인 모습에 호감을 느낀다.

그 친구 덕분에, 나의 성향과 생각들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게된 계기였다. 본인은 딱히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았음에도, 나에겐 굉장히 특별한 순간을 선사해줬다. 남고에 다니던 나에게, 이성의 사고관을 조금 더 넓혀준 고마운 사람이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던 나는 친구에게 번호를 받게 되었고, 축제를 핑계삼아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답은 느렸고, 그때 눈치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음을.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이라도 표현해보자 싶었다. 그래야 쉽게 털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만날 수도 없었으니, 용기내어 생각해낸 게 고작 문자였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담았다. 그때 그랬고, 그래서 말을 해보고 싶었다고. 그럼에도, 말을 할 수 없던 상황 때문에 이렇게 연락을 했다고. 무슨 느낌인 지 알 것 같아, 이렇게라도 말을 해야겠다 생각했고, 너 좋아한다고. 돌아오는 답은 고맙게도 장문이었다. 이 활동을 하게 된 것도 학교생활 열심히 하려 그랬던 거다. 계속 공부하고 있어서 안된다며 미안하다. 그때 너가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멋있었다는 식의 답이었다.

뭐 거절을 들었어도 어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했고 그거면 된 것이다. 더운 여름, 의욕이란 것 하나 없던 고등학생의 내가, 잠깐은 마음이 뜨거워졌던 순간이었다. 그때 처음 느꼈던 기분과 감정은 지금도 여전히 아련하게 남아있다. 생각이란 건 없이 살던 내가, 조금은 생각이란 걸 하게 해준 사람이라서 고마운 감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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