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쓸데없는 일을 좋아하는 편이다. 가끔 사람들을 주의깊게 관찰하는데, 높은 층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를 마실 때면 길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을 살펴본다.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면, 카페에서는 보이지도 않던 사람들의 생각이 읽혀지는 느낌이 든다. 어떤 이의 마지막 순간을 기리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나온다. 생각보다 평온한 사람, 거품물고 쓰러지는 사람, 애써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는 사람, 옆에서 묵묵히 곁을 지키는 사람.
특히 부모의 장례식에서는 이 모습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 부모가 투병 중일때 해외여행가고, 선거봉사한다고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이들이 부모의 죽음 앞에서 거품물고 졸도한다. 정작 곁을 지켰던 사람은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부모의 죽음에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바닥까지 추락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효녀, 효자를 가르는 기준을 장례식장 앞에서의 울음의 데시벨로 정한다면 부모가 투병 중일 때 찾아뵙지 않아도 된다. 부모가 투병 중일 때 편한 마음으로 여행을 가도 된다. 효녀와 효자의 기준이 그러하다면, 어찌 됐든 앞에서 누구보다 크고 슬프게 울면 되는거니까.
효녀, 효자를 나누는 기준을 떠난 후의 부모님의 제사를 모시는 것으로 한다면 생전 찾아뵙지 않아도 된다. 부모가 떠나고 제사를 모신다는 이유로 당당하게 상속을 요구해도 된다. 뭐가 됐던 제사를 모시면 되는 것이니까.
사람이 추악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겉모습만 사람일 뿐 동물만도 못한 이들이 꽤나 존재한다는 걸 인정할 때 초연해질 수 있다. 사람의 바닥이 드러나는 순간은 가장 비극일 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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