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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그대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아름답다.

by JW9 2021.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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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방문하게 된 간담회에서, 앞에 앉아있던 직원과 자꾸만 눈이 마주쳤다. 가만히 있어도 뭔지 모를 분위기가 그 사람에게서 흘러나왔다. 전부터 나를 흔들고 있던 사람이 마음에 계속 남아있었던 탓인 지, 눈이 마주치던 이 사람에게서 신기한 느낌만 받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 시작될 때, 이 사람과 일을 함께하게 된 날이 찾아왔다. 그 사람의 이름을 보고, 단번에 알았다. 이름을 몰랐음에도, 느낌으로 알아챘다. 이때까지도 몰랐다. 이 사람에 대한 내 생각들이 어떠한 지를.

그렇게 함께 고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 평상 위에 앉아 나누던 소소한 얘기들과 가끔씩 불어오는 살랑한 바람. 너무나 사소하고 별것 아닌 순간이었음에도, 오랜 만에 겪어서일까 그 날은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있다.

푸른 나무들 사이,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뜯으며 일상을 묻던 그 사람. 나는 간단한 대답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다고 생각을 했던 나의 착각에, 가까이할 수 있던 기회를 놓쳤다.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별 생각없이, 지나갈 것 같았던 시간들은 그 해 여름 나를 떨리게 만들었다. 또 한번의 함께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뜨거운 태양이 그 사람을 비췄던 순간에, 불현듯 처음 봤던 그때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받았던 느낌과 뭔지 모를 간지러움이 더해졌다.

열대야 속, 잠 못드는 여름밤이 계속되면서,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은 정리되지 못한 채 머릿속을 방황했다. 정리하고 싶어도, 마음처럼 되지 못했다. 그 사람은 열대야와 함께 매일의 여름밤을 괴롭혔다.

함께할 순간을 만들었다. 쉬지않고 계속해서 꼬리를 무는 이 생각들에 내가 내린 답이었다. 그 사람과 함께할 순간이 일단 많아야 될 것 같았다. 그래야 잠못드는 여름밤, 마음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왜인걸, 더 마음이 불편했다. 평소 입지 않던 옷을 입은 느낌처럼, 이상했다.


그 이상한 느낌은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그 사람 눈에 자꾸 드려고 했다. 함께하는 순간이 많을 수록 기억될 시간은 조금씩은 더 늘어나지 않을까 싶었다. 개인적인 일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그 사람이 내렸다. 플랫폼 세네개 정도 떨어져있었음에도 그 사람이 보였다. 우연을 핑계로 인사를 하고 싶었다. 뛰었다. 출구로 올라갔다.

다른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봤다. 어깨에 손을 걸친 모습을 봐버렸다. 그 자리에서 앞으로 가지도, 열차를 타러 돌아가지도 못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예매했던 열차를 보내고도 한참을 서있었다. 돌아오는 열차에서 창문에 기댄 채, 멍하니 있다가 눈물이 났다. 이랬던 적이 없었는데, 무엇 때문인 지도 모른 채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마주하는 순간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빵을 건네며, 대화도 하고 조금은 가까이 계속해서 친하게 지냈다. 밥약속도 건넸다. 아무 것도 모른 척 하면서. 모른 척 하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웠던 지. 돌아오는 답은, ‘그래 언제 밥한번 먹자’ 정해지지 않은 약속의 답이었다.

언제부턴가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퇴사했다는 소식에,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이 느껴졌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만나면 주려고 했던 것들을 이유삼아, 얼굴을 봐야겠다 생각했다.

건넬 것이 있다며, 그 사람에게서 그리 멀지 않은 근처에서 기다리다 전화를 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뭐가 그리 설렜던지, 그 사람은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건넬 것이 있다며 잠깐 나올 수 있냐고 얘기했다. 다른 일이 있다며 어렵다고 말하는 그 사람의 말에서, 예감했다. 나와 그 사람의 사이는 어떤 느낌인 지를. 희미했던 풍경이 또렷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확인을 받고 싶었다. 그래야 거품처럼 부풀어진 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꺼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늦은 오후,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웃으며 전화를 받는 목소리에 어떤 말을 해야할 지 모르고 입술이 떨렸다. 솔직하게 내 마음을 건넸다. 긍정의 회신이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너를 좋아하게 된 순간들과 함께한 순간들에 행복하기도 때로는 슬프기도 했다며 말을 끝맺었다.

돌아오는 말은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알고있지만, 모른 척하며 능청스럽게 답했다. 그 사람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잘 지내라며 앞으로의 날들을 응원했다. 나 역시,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며 그 사람의 앞날을 응원했다.

감정은 찰나일 뿐이라며, 무시하고 지냈다. 그래서 조금은 차가웠던, 누군가에겐 냉정하게 보였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그 사람은 감정은 찰나의 순간이 아니란 걸 알려줬다. 처음 봤던 신기한 느낌, 다른 사람과 함께 있던 순간을 봤을 때 나의 모습. 그 모든 기억통증들은 지금도 후유증으로 아련하게 남아있다.

그 사람에 대한 소식은 이제는 들을 수 없다. 최근까지 들리던 그 사람의 소식은, 처음 봤던 그때 그 모습처럼 그대로 아름다웠다. 그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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