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자가 등장하고부터, 문자의 파급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그러다보니, 문자를 읽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꽤 많아졌다. 한문을 읽지 못하던 하층계급의 백성들.
한글이 등장했음에도 문맹률은 한동안 개선되지 못했다.
근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인쇄술이 급성장하게 되고, 신문의 발행이 증가했다. 정보과잉시대의 현재에는 검색만으로 쉽게 뉴스기사를 볼 수 있고, 칼럼도 읽을 수 있다.
요즘은 숏폼의 시대다. 15초 짜리 춤추는 틱톡영상, 조금 야한 옷을 입고 유혹하는 짧은 영상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왠만한 정보는 다 영상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니, 글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고, 읽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긴글이라거나, 한자어 등 높은 이해도를 요구하는 문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젊은세대들에게 글이 외면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글을 읽어야 한다. 글은 내가 직접 보고 이해해야 하는 능동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뇌를 골고루 자극시켜준다. 이러한 특성 탓에 글이 영상보다 더 기억에 잘 남는다.
동영상 강의를 보면서도 우리는 왜 교재를 참고하는가. 강의만으로는 머릿속에 기억이 잘 남지 않기 때문이다. 글자를 시작으로 인간은 기록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문명의 시작이 이뤄졌다. 문명 안에서 책은 인간사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래서 책은 오랜시간 인간사에 남을 수 있었다.
진나라의 시황제가 분서갱유를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책이 주는 그 영향력과 파급력을 알았기 때문에, 백성들의 사상을 통제하려는 목적에서 시작한 것이다. 글이 주는 힘이 정말 강력하다는 걸 알 수 있는 사례다.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세이]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0) | 2021.09.29 |
---|---|
[에세이] 웃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자세. (0) | 2021.09.29 |
[에세이] 저렴한 곳은 피하라. (0) | 2021.09.28 |
[에세이] 욜로로 산다는 건 (0) | 2021.09.28 |
[에세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려면 (0) | 2021.09.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