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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회피하려한다. 죽음을 외면하면 할수록 더 두려워질 뿐이다. 마주할 때 비로소 죽음을 인정할 수 있는데, 무섭다는 이유로 두렵다는 이유로 고개를 돌린다. 마치 주사바늘을 찌를 때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추기 위해서,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요즘은 장례식장에서 장례가 치뤄지고, 납골당에 안치되다보니 죽음을 체감하기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집에서 장례를 치뤘고, 49제를 지냈고 죽은 자는 집근처 산에 안치되었다.
누군가의 죽음에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하는 과정을 몸소 부딪히며 깨달았다. 과거에는 죽음이란 개념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제각기 찾아오는 죽음의 순간은 다르지만, 임종 직전의 순간을 주변 사람들은 감각적으로 알았다.
현재 우리는 죽음을 예쁘게 포장하려 한다. 우리는 이제 그 과정을 볼 수 없게 됐다. 죽음도 삶의 한부분이다. 그런데 그 죽음을 우리는 생략한다. 죽은 이의 삶을 건너뛴다. 주변 이들의 삶도 그 안에 녹아있는 것인데, 죽은 자와 연결된 모든 이의 삶을 과감히 넘겨버린다.
죽음이란 것이 더 슬퍼졌다. 소중한 이의 죽음을 마주하지 못한 채, 보지 못한 것의 두려움을 껴안고 나의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준비란 건 없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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