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의 나는 현재를 살 뿐이다. 어떤 생각을 가져도 그건 그때 그 시대의 분위기가 반영된 나의 사고일 뿐이다. 앞서가는 생각은 없다. 현재의 사회와 환경이 맞물려 머리 속에 종합되어 나타난 결과값이다.
성추행, 성폭행 등 빈번했던 우리나라 과거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여성을 납치해 결혼을 했던 지난 날에는 그것이 당연했다. 보쌈이란 단어로 납치를 미화해서 표현하던 시절이었다. 그 누구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꾸짖거나 질책하는 사람이 없었다.
두 집 살림도 빈번했던 50년대와 지금은 너무도 다르다. 인간은 인간이 만든 진보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에 압도당하면 모를까, 지배할 수는 없다. 인간은 시대적 한계에 부딪힌다.
메밀꽃 필 무렵을 쓴 이효석 작가도 시대를 살았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허생원이 장돌뱅이로 살고 있는 동이를 보고 자신의 아들임을 확신하는 장면이 있다. 그도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단순히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핏줄인 것을 안다는 건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 하나가 인물관계의 중요한 복선으로 쓰인 것을 보면 당시, 왼손잡이가 흔치 않았다는 시대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비평가들은 이 대목에서 극찬을 했다고 한다. 어느 누구 과학적 사실을 꼬집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시대를 살아간다. 어제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며 내일을 살아가지 않는다. 지금 떠오르는 나의 생각은, 시대가 준 양분이다. 온전한 내 생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겸손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이런 이유에 있다. 대부분의 생각은 현재에만 적용 가능하다. 그 논리는 시간이 지나게 되면 오류가 날 확률이 높다.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세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방법. (2) | 2024.01.30 |
---|---|
[에세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 (1) | 2024.01.28 |
[에세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1) | 2024.01.26 |
[에세이] 디자인에 집착하라 (0) | 2024.01.25 |
[에세이] “그냥”의 의미 (1) | 2024.01.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