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이라는 말에 반대는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거짓이라 이야기 한다. 서양에서는 “참”이라는 말이 없다. Truth, 진실이라는 뜻의 단어와 함께 진실과 거짓으로 이항 대립되는 단어만이 있다.
참과 거짓의 관계는 이항대립이 아니다. 그 너머의 미묘한 관계다. “참말이냐?”라는 물음은 사실을 묻는 의미도 있고 놀라움의 느낌도 있다. 자연의 흐름에, 이치에 맞는가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참깨와 참나물, 참새와 참나무 등 참이라는 단어가 붙은 낱말도 있지 않은가. 왜 앞에 참을 붙였을까. 우리 눈에 흔히 볼 수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조상들의 눈에 언제든 볼 수 있었던 자연스러운 것들에 말을 붙인 것이다.
“아이.. 참 왜 그러는 거야”에서의 ‘참’도 추임새의 느낌이 있지만 평소 자연스럽지 못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함께 쓰인다. 강조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재밌는 건 참이라는 단어는 일하고 잠시 쉬는 시간을 표현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이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는 참은 우리말이다.
참이라는 우리말은 “자연스러움”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자어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한자문화권에 끼어 있었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 토박이 말이 살아남아 지금까지 한국인의 입에 남게된 것이다.
한자는 우리에게 참이 아니었던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 옛날 왜 소수만이 사용했을까. 다른 이들이 쓰기엔 자연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수가 사용하기엔 억지스러움이 존재했기에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단심가의 내용을 살펴보라. 向主一片丹心 향주일편단심은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로 해석이 되고 寧有改理與之 영유개리여지는 “가실 줄이 있으랴” 로 해석이 된다. 이 두 문장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글을 읽어야 한다. 말로 들었을 때는 유추하기가 어렵다. 뜻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동음인 글자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참이다. 참으로 살아야 한다. 자연스럽게 말이다. 현재 우리는 참을 잃었다. 자연을 보고자 창을 냈던 민족이었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바람과 함께 풍경을 보고자 분합문으로 창을 위로 올릴 수 있게 했다. 우리답게 살아야 한다. 참의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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