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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는 6.25 전쟁으로 심한 후유증에 매일 밤을 앓으셨다. 다리에는 총알이 박혀있어, 거동하는 것이 불편하셨다. 전쟁의 후유증이었을까. 술을 자주 드셨다. 전우가 죽는 것을 두 눈으로 봐야 했고, 끝나지 않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그 시체를 밟고 넘어가야 했을 것을 생각하면, 그 정신적인 충격은 감히 이해할 수 없다.
국가유공자를 수차례 신청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끝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럼에도 이모와 삼촌 어머니 모두 불만을 내비치지 않으셨다. 국가에 대해 조금 아쉬운 감정이 들뿐이다.
해상사고를 국상으로 승격시켜 7년을 넘게 공공장소에서 슬픔을 나눴으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 개인 사유지에서 슬픔을 기리는 방법도 있다. 제사는 이제 각자 집에서 지내도 된다.
분향소 옆에서 유족과 자원봉사녀가 성행위를 할 정도면, 이제 슬픔에서 충분히 빠져나온 것이 아닌가. 본인들의 슬픔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 자체를 불쾌해야 할 상황인데, 오히려 이걸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라는 영화 대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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